난 어려서부터 일본의 SF 로봇 애니메이션을 무척 좋아했다.
마징거Z, 그레이크 마징거, 그랜다이저, 게터로봇, 라이딘, 콘바트라V, 다이모스, 지그, 메칸다 로봇, 잔봇3, 다이탄3, 고담…. 초중학생 때에 즐겨 부르던 이들 TV 만화 오프닝 송을 지금도 대부분 잊지 않고 완벽하게 읊조릴 수 있을 정도다.
그러다가 1979년 봄에 등장한 ‘기동전사 건담’은 나에게는 거의 컬처 쇼크였다.
그때까지의 인공 로봇들은 모두 하나같이 ‘지구의 유일한 영웅’ 이었고, 탁 봐도 악당처럼 생겨먹은 나쁜 괴물을 물리치는 획일적인 ‘권선징악 사상’이 주류였다.
그에 반해 건담의 무대는 미래의 ‘전쟁터’이고, 여기에 등장하는 대립 세력은 단순히 착한 놈 나쁜 놈이 아닌, 각자 자기가 속한 집단을 위해 싸우는 정당성을 지닌 한 많은 ‘인간’들이다. 주인공 로봇이 소모품이나 도구로서의 개념인 대량 생산품이란 설정도 충격이었다.
건담의 이러한 독특한 무대 설정과 다양한 캐릭터는 그 이후에 등장하는 대형 로봇 애니메이션에 막대한 영향을 미쳤고, 그렇게 만들어진 로봇 만화는 당연히 우리나라에도 유입되었다.
그런데 여기 재미있는 공판 기록이 있다.
그 당시 우리나라에는 ‘기동전사 건담’의 해적판(비디오나 장난감)이 판을 치고 있어서 이에 따른 저작권 침해가 문제가 되고 있었다.
그래서 건담의 판권을 가지고 있는 일본의 ‘선라이즈’ 가 한국 내에서의 ‘건담’을 상표 등록하려고 했다.
그러나 한국의 특허청은 ‘한국에서 「건담」이라고 하는 것은 만화에 등장하는 로봇을 가리키는 일반명사’ 라는 말도 안 되는 이유를 들어 이를 거부했다(특허청 1997년 9월 3일 95당1393,1394(병합)호).
선라이즈는 당연히 이에 맞서 항소를 했고 결국 재판에서 이기긴 했지만 말이다(특허법원 제2부 1998년 7월 24일 98허1969,1976(병합)호).
웃기지 않는가? 공상과학 만화에 나오는 로봇은 다 건담이라니!
4륜구동차를 ‘찝차(JEEP은 다임러 클라이슬러의 등록상표)’라고 하고, 박스형 승합차를 ‘봉고차(BONGO는 마즈다의 등록상표)라고 부르는 것과 똑같은 발상인데, 일반인이 편의상으로 부르는 것은 몰라도, 법대에서 법을 전공한 사람들이 이런 아마추어 적인 논리를 재판에서 적용하다니!
한심하다 못해 보고 있는 내가 더 창피하다.
그러나 그나마 항소심에서 이긴 건담은 양호한 편이다.
잘나고 똑똑하다는 우리 나랏님들
‘스타벅스’를 모르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미국을 대표하는 이 세계 최대의 커피 회사는 한국의 커피체인점 엘프레야라는 업체가 스타벅스와 아주 유사한 로고와 마크를 사용하자 ‘소비자를 혼동케 하므로 비슷하게 생긴 상표를 쓰지 말아 달라’고 특허청에 제소를 했다.
논쟁의 원인은 엘프레야가 2003년 8월에 등록한 상표이다.
녹색 바탕에 2개의 동심원이 그려져 있고, 그 사이에 「STAR PREYA」 「COFFEE」라는 문자와 별이 2개 들어가 있다. 「BUCKS」라는 문자 외에는 스타벅스의 상표와 구조가 똑같다.
가운데의 인어 그림(스타벅스)과 여신의 옆얼굴(엘프레야)도 분위기가 매우 닮았다.
그런데 한국의 최고재판소는 ‘초록색 바탕에 2개의 동심원 구조나 별 모양은 흔히 볼 수 있는 구성 이고, STAR라는 단어도 일반적으로 많이 쓰이므로 소비자가 혼동을 일으킬 우려는 없다’ 는 이유를 들어, 1심에 이에 2심에서도 스타벅스의 패소를 결정했다.(한겨레신문 2005-03-28)
장난치십니까? 내가 보기엔 엄청 혼동하게 생겼구만요. 스타먹스, 엄청 열 받았겠다.
이 스타벅스 건도 그렇고 위의 건담 건도 그렇지만, 도대체 사법 기관에서 일하는 분들의 판단력은 과연 믿을 만 한 건지 지극히 의심스럽다. 로봇이나 커피에 대해 조금만이라도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어이가 없다 못해 쓴웃음도 안 나오는 상황이다.
뭘 몰라서 저런 판결을 내리는 건지, 아니면 알고도 일부러 모르는 척 하는 건지 도무지 감이 안 잡힌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어느 쪽이든 간에 참으로 망신스럽다 는 일이라는 것이다.
지난 1월 17일, 바이크의 고속도로 통행을 금지하고 있는 현행 법규가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는 헌법에 위반하지 않는다는 헌법재판소의 판단이 나왔다.
위반이긴커녕 아주 정당한 조치라는 말도 덧붙이고 있다.
이유를 들어보니, 고속도로 등에 바이크 통행을 허용할 경우 고속으로 주행하는 바이크의 사고 위험성이 더욱 증가되고, 그로 인해 일반 자동차의 고속 주행과 안전까지 저해할 우려가 있기 때문에, 바이크 못 다니도록 한 게 ‘아주 잘 하는’ 짓 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바이크 통행을 금지하더라도 그로 인한 ‘기본권 침해 정도는 경미한 만큼 기본권 제한 최소한의 원칙에도 위배된다고 보기 어렵다’ 고 한다.
웃기지 말라고 하고 싶다.
첫째, 일반도로보다 고속도로가 훨씬 안전하다(나는 해외에서 숱하게 고속도로를 달려 봐서 안다).
둘째, 제대로 조종한다면 바이크는 별로 위험하지 않다(이것도 지금까지의 경험에서 나온 것).
마지막으로-원래는 이게 첫 번째 이유이긴 하지만-고속도로를 달리든 말든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되찾고 싶다(민주주의 국가의 납세자라면 당연한 권리).
하긴 뭐, 건담이나 스타벅스도 모르는 무식한 분들이다. 바이크에 대해서도 어차피 그 정도 수준 밖에 안 된다.
그들에게 설명해 줘봐야 쇠귀에 경 읽기다. 내 입만 아프다.
- 월간 모터바이크 2007년 4둴호에서 발췌
